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1세 (문단 편집) === 외모·육체적 능력 === || [[파일:Richard_Coeur_de_lion_Gisant_Rouen.jpg|width=100%]] || || 루앙 대성당 무덤 조상 ||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했을 무렵인 1189년에 32세의 리처드에 대하여 리처드 왕의 편력기의 작가와 뉴버그의 윌리엄의 기록이 판이한데 존 길링엄 교수에 따르면 뉴버그의 윌리엄 기록에 신빙성이 부여된다. (1) 리처드 왕의 편력기는 리처드 1세가 사망하고 18년이 지난 1217-18년에 전설화를 거쳐서 쓰였기에 회의적이며. (2) 잉글랜드의 성직자로서 뉴버그의 윌리엄의 기록은 리처드의 생전에 쓰였으며 코제샬의 랄프의 기록과 [[교차 검증]]이 된다는 점이 근거가 된다.[* J. Gillingham, ''Richard the Lionheart'' (London, 1999), p. 266] * 리처드 왕의 편력기의 저자는 이렇게 각색했다. "키가 크고 몸의 균형이 좋다. 그의 머리색은 [[머리카락/주황색|붉은색과 금색]]의 중간이었다. 그의 팔다리는 유연하고 곧다. 팔이 꽤 길어 검술에 특히 걸맞았고 그의 긴 다리는 체격과 어울렸다." * 뉴버그의 윌리엄에 의하면 리처드는 '''고도 비만에 외모가 추했다.''' "확실히 보기 흉한 증상이(unbecoming symptom) 있고 안색이 창백하고(pale complexion) 너무 뚱뚱했다(overweight). 그리고 몸에 백 개가 넘는 [[궤양]]들이(over a hundred ulcers) 잔뜩 자라 있었다." * 코제샬의 랄프는 이렇게 적었다. "(그의 말년에) 평소에는 충분히 인심이 후하고, (성품이) 매력적이고(attractive) 농담과 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어전 회의를 할 때에는 안광에 살기가 도사렸고 목소리는 표독스러웠으며 행동거지는 흉포한 사자 같았다. … 의사가 하는 일을 애먹였을 정도로 지나치게 뚱뚱했다(too much fat)." 웨일스의 제럴드는 리처드가 "평균보다 키가 꽤 크다"라고 했는데 '''2m에 가까운''' 엄청난 장신으로 형인 [[청년왕 헨리]]와 키가 닮았으며 부왕 [[헨리 2세]]는 키가 중간이었던 반면 [[엘레오노르 다키텐]]은 키가 비범했기 때문에 형제는 모친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당시 증언을 종합해보면 '머리색이 아주 훌륭한 붉은색이었던' 부왕 [[헨리 2세]]가 '안색이 붉고 거무스름한 데에다 [[주근깨]]투성이었고 회색 눈'의 소유자였기에 리처드도 이런 요소를 물려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동생인 [[존 왕]]은 어두운 붉은 머리(dark red hair)라서 모후 엘레오노르가 어두운 계열의 머리색으로 추정되곤 한다.] 그러나 형제들인 [[청년왕 헨리]], [[제프리 2세]]뿐만 아니라 [[존 왕]] 또한 미남이라는 동시대의 증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조적으로 리처드만 그와 같은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음유시인들마저 그의 외모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당대의 이상적 남성상은 전통적인 남성상과 더불어 궁정 연애의 유행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미덕이 강조되었고, 예법에 능숙하거나 외모가 잘생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처드는 많은 음유시인을 후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칭송의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 대중역사서의 경우에는 리처드의 외모에 대해서 리처드 왕의 편력기의 저자, 뉴버그의 윌리엄, 코제샬의 랄프의 기록들과 보충적으로 부친인 헨리 2세의 외모에 대한 증언들이 짜깁기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Richard was said to be very attractive; his hair was between red and blond, and he was light-eyed with a pale complexion.(리처드는 아주 매력적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머리색은 붉은색과 금색의 중간이었고 눈은 회색이고, 안색은 창백했다고 한다.)" 역사학자도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나 가문이 있기 마련이지만 대중역사가들은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국내에서 리처드 1세와 관련하여 주로 인용되는 앨리슨 위어의 저서《아키텐의 엘레오노르》에서 앨리슨은 "[[존 왕]]이 유사시에는 부왕이나 리처드 형만큼 정력적이고 강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전쟁도 싫어했고, 마상창시합에 나간 경험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군 지휘관으로서도 제법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필리프 2세]]는 앙주 가문 사람들 같은 매력이 없고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고 소심했으며 위생 관념마저 엉망이고 작은 키에 평범한 사람이었고 군사 기술이 뛰어나지 못했다"라고 인물과 가문에 대한 주관적인 편파를 드러냈다. 이런 대중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전달을 표방하여 이런 서술을 조작하고 믿으며 독자들에게 확산시키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연구 중심의 사학자들이 개인적 면모야 둘째치고 군사적 평가에 대해 이렇게 쓰면 스스로 전문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인용률이 날아가고 적들의 먹잇감이 된다. ''''힘으로 당해낼 자 없던 천하장사''''였다고 한다. 그와 유사하게 모친의 외숙부 중에 안티오키아 공작 레몽은 괴력의 소유자로 생전 [[헤라클레스]]로 불렸고 맨손으로 철봉을 구부리고 타고 있는 전투마를 허벅지 힘만으로도 다스릴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리처드 1세의 신체적 소질에 대해 중세 전문가라고 하는 제임스 브런디지의 평가는 이러하다. >리처드는 말년에 접어들어 신체 활동을 줄였던 것으로 보여도 불구하고 혈기왕성한 힘과 근육계를 평생 유지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극도로 뚱뚱해졌다. 생의 대부분에 걸쳐 과격한 신체 활동으로 향상된 타고난 육체적 힘과 결합하여, 그는 일련의 잘 연마된 [[반사신경]] 또한 소유했다. 이 재능이 젊은 시절에 그가 굴지의 전사로 등극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바탕이 되었다. >---- >J.A. Brundage, ''Richard Lion Heart'' (New York, 1974), p. 250 역사가들은 리처드의 건강 상태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만 보인 것은 아니었다. 리처드 왕의 편력기의 저자는 증상에 대해 적지 않았지만 활동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병을 앓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뉴버그의 윌리엄은 리처드가 비만이 심했고 종종 [[오한]]이 있었으며 몸에 백 개가 넘는 [[궤양]]들이 더덕더덕 자라 있었다고 적었다.[* 말년의 헨리 2세는 피가 흐르는 궤양들이 증식해서 전신을 뒤덮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생존력은 좋았다. 왜냐면 당시 십자군의 건강을 위협했던 것은 (1) 영양 결핍으로 인한 피로감, 괴혈병, 면역력 저하 (2) 과밀집과 비위생 (3) 시신에 오염된 식수 (4) 습한 날씨, 홍수, 잦고 급격한 온도 변화 (5) 열, 전신의 오한, 식은땀과 살갗이 벗겨지고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이 빠지는 증상을 동반한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었다. 리처드 1세는 이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하여 십자군 지휘를 강행하여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그 또한 전염병으로 머리카락을 잃기도 했지만 호버든의 로저는 "머리카락을 잃었으나 … 곧 회복되었다."(capillos suos deposuerunt … uterque regum convaluit.)라고 증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